http://sports.news.naver.com/k_league/news/read.nhn?oid=079&aid=0002831654
위의 기사보다가 경주시민축구단 감독 이름이 이태홍이길래 부천SK에서 뛰었던 이태홍인가 하고 찾아보니 맞네요.
목동 홈경기 당시 2골을 넣은 후 서포터쪽으로 90도 인사하는 세레모니를 했다는 이야기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연식이 있으신 올드팬들께서 풀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듣기만 해서 잘 모르겠네요.
살 많이 쪄서 처음엔 못알아봤습니다. 근데 지금이 더 잘생겨지신듯...
괜찮은미래
2016.05.19당시 공격진이 나름 화려해서ㅋㅋ
올드팬 나와 주세요~~~
황상현
2016.05.19..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Bucheonista
2016.05.19그래도 조정현은 기억나는데...ㅎㅎㅎㅎㅎ
티라노
2016.05.23이분과 부천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1991년 남북 청소년대표팀 (이른바 1991 코리아 단일팀) 이 평가전 상대가 없어서 평가전 상대를 찾는데 그 상대로 나선게 유공이었습니다. 이때 남북단일팀 주장이 이태홍 이분이셨습니다.
이태홍 선수는 당시 청소년 팀에서 KKK, 강철(여러분이 아시는 그분 맞습니다. 원래 이분 공격수였던 분입니다.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에서 북한의 윤철 선수를 막기 위해 수비수 전환뒤 계속 수비를 맡으셨죠), 서동원 선수와 함께 공격진을 맡았으나 유공과의 경기에서 중간에 스위퍼로 포지션 체인지 뒤 수비수로 전향합니다.
정확히는 당시 어시스트왕이셨던 유공의 신동철 선수를 막지 못해 페널티킥을 내 주고 당시 폴란드 용병중 한명인 뷔텍이 골로 연결시킵니다(이때 테드는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뒤지자 최전방 공격에 있던 이태홍 선수를 수비로 내려보내는데 이게 성공해서 평가전은 1:1로 비기게 되죠.
근데...이 플레이가 너무 좋아서 최전방 공격수였다가 이후 수비수로 뛰시게 됩니다. 그래서 1991 청소년 대회때는 수비로 뛰시다 다시 대학 가서 공격수로 뛰고 프로 입단도 공격수로 하게 되죠.(최진철처럼)
이후 대학 졸업후 일화에 스카우트 됩니다. 선수 생활의 커리어는 아주 길지 못했습니다. 이분의 하이 커리어는 대부분 일화시절(사실 전체 커리어 중에서 일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급이라)입니다.
부천에는 1997년에 오게 되는데 이해가 나름 기념비적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1991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의 수비수들이 거의 그대로 부천에 이식됩니다.
강철-이임생-이태홍-박철에다가 골키퍼로 당시 1991팀의 골키퍼인 최익형(이분은 끝내 프로데뷔를 못하고 허리 부상으로 은퇴)도 들어오고 이용발도 1991청소년대표팀 단일팀에 선발은 안되었지만 대한민국 청소년대표팀으로 나갔었지요. (거기에 팀 의무담당인 김장렬씨도 1991 단일팀 의무담당이기도 한... 나름 진기록입니다)
이분은 1997-1999에만 뛰었지만 실제로는 경기수가 많지 못한지라 부천에서 크게 기억되기는 어려웠지요.
저도 부천 선수보다는 1991 남북 축구 청소년 단일팀 주장으로 더 크게 기억합니다.
키가 188cm로 크시고 제공권이 좋았던 분입니다. 부천에 오셔서 부상 때문에 출전기록이 크게 많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