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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국

2008.01.27

K리그 출범 25주년 - 서포터이야기

조회 수 1908 추천 수 65
Bucheon 서포터즈가 자랑스럽네요. ㅎㅎㅎ

[출처:플라마]

K리그가 25년을 맞았지만 정확히 ‘K리그’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모두 잘 아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제 K리그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고 있는 익숙한 명칭이 되었고 그런 K리그의 각 구단 서포터도 축구팬이라면 어느 정도는 다들 익숙해져 있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의견의 차이나 보는 시각도 제각각이겠지만 어느덧 서포터라고 불리는 존재는 K리그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K리그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던 것처럼 서포터 역시 그랬다. 그 시작은 정말 미미했을 뿐이다.

1995년, 당시 한국 프로축구에는 아직 K리그라는 이름이 붙어있지 않았다. 팀 수도 새로 이해부터 창단해 리그에 참여한 전남, 전북을 합쳐 지금의 절반 가량인 8개에 불과했다. 프로축구가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제도나 기타 여러 가지 사항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연고지의 문제만 하더라도 명확하지가 않았다. 전남, 전북이라는 지역명을 붙인 팀의 창단이 이루어졌지만 이와 같은 광역 연고지명의 채용에 대한 연맹 측의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현재까지 다소의 문제 요소를 만들어놓게 된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거의 공식적으로도 지역명의 사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업명을 사용하는 것이 대세였고 하다못해 포항제철(줄여서 포철)이라는 이름에서 공식명칭을 포항으로 바꾸었건만 여전히 포철이라는 명칭이 익숙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95년이라는 당시의 특수한 또 다른 상황은, 같은 구장을 3팀이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서울에는 유공, 일화, LG의 세 팀이 명목상 연고를 두고 있었는데 이 세 팀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기장이 동대문 운동장이었다. 물론 이 세 팀 모두 각각 팀의 사정에 맞추어 지방에서 경기를 갖기도 했지만 원칙상으로 홈구장은 서울의 동대문구장이었다. 이 3팀이 일부 여론과 이를 수용한 프로연맹의 의사에 따라 서울에서 떠나는 것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95년이었다.

결국, 유공을 시작으로 일화와 LG는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문제는 당시부터도 논란이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동화시킨 연맹의 일방적인 조처는 상당한 판단착오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결정의 밑바탕에는 J리그에서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물론 8팀 가운데 3팀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불균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불균형한 모습은 한국 사회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기 자체만으로 보면 큰 불균형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런 여러 가지 면에서 95년은 한국 프로축구의 변혁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월드컵 유치운동이 시작된 해로 한국 프로축구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 자체가 변하기 시작한 때라고도 할 수 있다. 서포터의 탄생도 어찌 보면 이런 주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95년 시점에서 한국의 프로축구 상황이 그리 좋았던 것은 아니다. 국내리그의 흥행저조와 관심부족은 지금과 비할 것이 아니었다. 당시 스포츠 신문의 1면에 프로축구나 축구 선수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TV중계는 더욱 그랬다. 지금과 같이 케이블 TV가 발달했던 것도 아닌 시절이다. 한편, 위성방송의 보급이 시작되면서 외국의 리그 등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늘었는데 유럽 리그의 모습은 우리 리그에 대한 생각에도 분명히 자극제가 되었다. 특히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일본 J리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경기력에서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축구고 J리그였지만 경기장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그런 가운데 최초의 서포터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나 자신이 95년에 그 속에 있었지만 사실 처음부터 같이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내가 그들을 본 것은 동대문 운동장의 건너편 스탠드에서였다. 내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주로 경기를 보던 곳은 본부석 옆쪽의 좌석. 그런데 그 정확히 반대편에 수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경기 내내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금은 보통 양편 골대 뒤가 서포터석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고 그렇지 않았다. 보통 동대문 운동장의 본부석 반대편 좌석은 중앙을 기준으로 각각 응원하는 팀에 따라 나뉘어 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3팀이 홈으로 사용하는데다가 한국과 서울이라는 특성상 야구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당시 동대문구장은 홈-어웨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았다.

PC 통신의 동호회에서 만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서포터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시작한 사람들조차 조금씩은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서포터라는 것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각각 생각하는 것이 조금씩은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통된 생각이 존재했다. 그것은 종래와 같은 응원방식은 축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시 축구장의 응원은 흔히 지금도 프로야구나 대학의 응원단에서 볼 수 있는 응원단장에 치어리더, 앰프가 사용되는 응원이었다. 무대 공연의상과 같은 것을 입은 목소리 좋은 응원단장이 마이크와 호각을 이용해 관중을 향해 힘차게 구호를 외쳤고 치어리더들은 유행가에 맞추어 멋진 춤을 추었다. 이런 응원방식을 좋아하는 관중도 있었겠지만 당시 ‘서포터 운동’을 시작했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전혀 축구와 맞지 않는 응원으로 배격의 대상이었다. 통상 응원단장은 경기를 보지 않았다. 치어리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앰프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과연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궁금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치어리더들의 춤은 경기에서 이기고 있을 때나 지고 있을 때나 경기 내용에 상관없이 거의 같았다. 떠올려보면 마치 동네 골목에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지만 춤과 노래를 계속하는 행사장의 도우미와 같은 모습이었다.

축구는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경기이며 그 흐름이 순간순간 돌변하는 경기이다. 그 흐름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바뀐다. 경기를 무시한 채 관중만 쳐다보며 응원을 이끌어내는 것은 이런 점에서 확실히 ‘비축구적’이었다.

생각이 조금씩은 달랐겠지만 서포터 운동의 시작은 명확했다. 경기의 흐름에 맞는 응원. 응원단장의 강제적인(?) 이끌림에 의한 응원이 아닌 자발적인 응원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리고 나아가 축구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며 이런 즐거움을 더욱 확산시켜 장래적으로는 축구문화를 개선해보고자 한 생각에서의 발로였다. 이 때문에 단지 동호회라는 그들만의 모임이 아닌 일반 축구팬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야말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좌석을 자리한 것도 그래서 본부석 건너편, 일반 관중이 자리하는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그들만의 유희가 되어서는 이 운동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1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같이해야 이 운동은 의미가 있었다.

이들이 처음 응원을 하게 된 팀은 유공이었다. 내가 알기에는 처음 이 서포터 운동을 하기 위해 몇몇 구단에 그 뜻과 의사를 타진했는데 당시 유공 구단이 이들의 의견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결국 그 운동의 시작은 유공이 되었다. 물론 당시 유공은 몇몇 점에서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었다. 니폼니쉬라는 존재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하여간 유공의 경기에서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앰프가 사라졌다. 대신 등장한 것은 북과 뿔피리, 목소리와 손바닥으로 무장한 일단의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좋지 않은 소리도 들었다. 시끄럽다느니 하며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끔 뭔가가 날아왔던 것 같은 기억도 있다.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근거 없는 비난은 일본을 따라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초기 서포터의 모습에서 일본 J리그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 우리,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목표로 했던 것은 J리그가 아니었다. 박자나 노래가 J리그의 팀들과 유사하거나 같다고 험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축구를 좀 더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J리그나 일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초기 서포터에서의 응원구호와 응원가는 유럽의 것, 그리고 일본의 것을 참조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축구가 보편적인 것처럼 이런 응원에 사용되는 것들도 상당부분은 보편적이다. 그 가운데 현재 각 구단에서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구호나 응원가도 탄생한 것이다.

처음 서포터는 분명히 ‘운동(캠페인)’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서포터라면 지금이야 1팀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큰 요소이지만 당시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팀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상대팀, 더욱 정확히는 상대 응원단(이것도 더욱 정확히는 ‘응원방식’)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응원단에 대해 뭔가 위해를 가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응원은 응원으로’라는 것도 하나의 원칙이었던 것 같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가장 물리쳐야 할 대상은 응원단장과 앰프였다. 따라서 이런 응원방식을 고수하는 팀은 거의 적대적(?)인 상대가 되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은 하루에 2경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솔직히 축구팬으로서는 1경기 가격으로 2경기를 보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다. 따라서 또 다른 1경기는 지금의 개념으로 보면 특별히 응원을 할 팀이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종래 응원방식을 고수한 팀의 상대팀을 응원해주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일상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서포터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반복해 말하지만 이는 캠페인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당시 우리가 전혀 상관없던 포항에까지 가서 포항을 응원하고 왔다는 것이다. 당시 포항을 응원했던 이유는 포항이 연고지 정착에 힘쓴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서포터 운동은 미미하지만 효과가 있었다. 동호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여 같은 일원이 되었다. 또 경기장의 그야말로 일반 관중도 점차 우리의 노래, 구호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이후로도 앰프와 응원단장은 상당히 오랫동안 경쟁상대가 되었지만(모구단의 경우는 그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이 방식을 고수했다.) 차츰 축구장에서는 공허하게 울리는 앰프소리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95년 유공의 응원으로 시작한 서포터는 이런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96년 수원의 창단과 함께 서포터 운동은 더욱 본격화되고 큰 확산을 보이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분명히 95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모험적 행동 덕분이었다. 95년의 작은 씨앗이 이후 수원에서 조그만 열매를 맺고 전국적으로 씨앗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수원 거둔 일단의 성공도 사실 어려움이 많았다. 초기의 자기희생적인 면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들었을 결과다. 수원에서도 분명히 초기에는 캠페인적인 ‘서포터 운동’의 성격이 많았다. 심지어 타지방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된 아직까지는 미약한 단계의 서포터들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들도 많았다. 역시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다른 구장에 가서 서포터 모집을 위한 활동도 같이 하고 응원도 같이 하곤 했다. 물론 유공의 시절보다는 내 팀이라는 의식이 더욱 강해졌지만 서포터 간에는 비슷한 생각, 즉 ‘축구발전’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제 시간도 많이 흘러서 이런 옛 이야기들은 현재와 너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포터의 개념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듯이 처음 시작했을 무렵과 지금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 서포터라는 것이 탄생했을 때는 기존의 관중, 응원단과 차별적인 의미가 어느 정도 내포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반 관중과 완전하게 분리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 관중과 같이 호흡하고 함께하려고 했던 면이 많았다. 사실 붉은 악마의 초창기를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구석의 사람도 많지 않은 곳에 자리하다가 점차 중앙으로 진출했던 과정도 있었다. 본부석 건너편의 중앙의 좌석은 일종의 목표였다.(당시 동대문은 대표팀 경기도 지정좌석제가 아니었다.) 중앙으로 가려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관중과 응원을 같이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특별한 ‘매니아’라는 식으로 불리는 이상한 존재가 아닌 축구에서는 극히 보통의 존재가 되려 했던 것이 처음 서포터의 모습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란 모습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뉴캐슬을 가장 좋아하는데 93년인가? 그 뉴캐슬의 경기를 TV로 보았을 때의 장면이다. 경기는 뉴캐슬의 멋진 승리로 끝났는데(아마 스코어가 3-2였는데 경기 내내 박진감 넘치는 시소게임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비추어지는 관중석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관중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대충 70이 넘은 노인의 모습이 나왔다. 옆에는 10대 20대의 젊은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같은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나자 힘찬 박수로 승리를 축하했다. 누가 노래를 부르라고 부추기거나 구호를 외치도록 종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멋있었다. K리그의 경기장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았으면 했다.

아직까지 나에게 서포터의 기본적인 자세라면 95년의 것이 떠오른다. 응원은 서포터만 하는 것이 되어서는 과거 응원단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앰프는 아니지만 확성기가 서포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물론 10년이 훨씬 지났고 상황도 많이 바뀌었으니 나름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남미 등 흔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앰프가 사용되고 또 치어리더가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아직까지도 앰프와 응원단장은 비축구적인 모습의 전형이며 과거 내가 싸웠던 대상으로 남아있다.

서포터는 이제 K리그를 구성하는 큰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어있다. K리그는 생존과 발전을 위해 다방면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그런 움직임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연맹이나 구단 등에서도 (미약하나마)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늘고 있다. K리그의 주요 구성원이 된 만큼 이런 노력은 서포터에게도 필요하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각각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수나 질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으며 발전(상당히 애매모호한 개념이기는 하지만)을 이루고 있는가를 스스로 반성해볼 필요도 있다. 구단이나 연맹에는 과거에 안주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서포터 측으로부터 자주 나오는 소리이지만 서포터 스스로는 어떤지 되돌아볼 시기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플라마 l 윤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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