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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식

2008.07.02

[회고록] 2003년 44경기의 기록 6 - 선수들에 대한 기억

조회 수 1340 추천 수 37
[회고록] 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시면 연재되는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現 부천 서포터 아이레즈의 김요한님이 올리신 글입니다.
김요한님은 현재 기자로 활동중 이십니다.



중간에 보시면,
이번에 다시 헤르메스 곁으로 온 신승호 선수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

즐감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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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선수 개개인에 얽힌 경기 이야기와 그 뒷이야기들이다.



부천의 선수들은 적어도 2003년도에는 매우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역사상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있던 죄책감이랄까, 올림픽대표팀 같은 후배선수들에게도 지는 프로팀의 분위기는 역시 좋을리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들은 정말 소박했다. 축구선수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감사했고, 그래도 자신들을 위해 목이 쉬어라 응원해주는 우리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경기장에서 표출하려고 애썼다.



남기일은 특히 그랬다.


그는 술, 담배 어느것도 하지 않았다. 노력파였고 과묵했으며 냉정했다. 그러나 성격은 능글능글하거나 유순하지는 않았다. 드라마 온에어에서 나오는 김하늘 같은 캐릭터랄까, 혹은 냉혹한 시어머니 캐릭터의 장미희 같은 분위기랄까.
약간은 거만하고 도도했으며 자존심이 무척 강했다. 부상을 입었을때도 트레이너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재활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프로선수들은 특히 경기 전후로 징크스들을 가지고 있다. 야구선수들은 ‘틱 증후군’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징크스가 많은데 축구선수들도 심하진 않지만 약간씩은 그런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남기일의 경우 전반전이 끝나면 옷을 홀랑 벗고 축구화를 벗고 공들여 매놓은 발목테이핑을 다 풀러버린다음 알몸으로 샤워를 한다. 그리고 다시 새 유니폼을 입고 발목테이핑을 다시하고 축구화를 신는다.
원래 그 시간에는 감독의 작전지시 등이 있지만 남기일은 혼자서 그런 행동을 했다. 나는 그의 그런 행동이 꽤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실력과 노력, 성실성이나 경기지배력을 생각했는지 감독들(트르판, 하재훈)도 크게 뭐라하지 않았다. 또한가지는 김장열 트레이너가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코너에 와 쉴때처럼 남기일의 팬티끈을 앞에서 잡아당기며 큰 호흡을 쉬게 한 뒤 뒤에서 껴안고 양 어깨에 강한 스트레칭을 해줬다. 이것도 남기일만 하는 독특한 경기전 행동이었다.


다보의 경우 자신은 별다른 징크스가 없지만 경기 2~3일 전부터는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아내가 유학 중이어서 나름 독수공방이었겠지만 그는 한국인 여자친구도 있었다. 으흠 (헉 19금인가...죄송) 한동진과 김한윤은 경기가 끝날때까지 최대한 말수를 줄이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고. 반대로 이성재는 신나게 떠들어댄다. 이원식은 항상 전반 시작을 보지 않는다. 후반전에 투입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반전 시작 이후 5분간은 라커룸에 앉아 뭔가 생각을 하고는 했다.
보리스는 잔디를 조금 뜯어 성호를 긋고 입을 맞춘다. 샤리는 경기 시작 직전에 끊임없이 입으로 뭔가 주문을 외운다.


여담을 하나 더 끼워넣자면 당시 부천클럽하우스 앞에는 SK와이번스 야구단의 연습경기장이 있었는데 나는 한가할때면 그곳에서 2군경기나 연습경기를 구경하곤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온 조진호나 현재 선발투수로 활약하는 채병용, 광속구 투수 엄정욱 같은 사람들의 사인도 받고 그랬다. 채병용은 나에게 경기전 나눠주는 기념 축구공을 하나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공을 던질때 왼손에 낀 글러브로 살짝 콧구멍을 후비는 버릇이 있었고 엄정욱은 박찬호와 비슷하게 공을 던지기 직전 땅을 내려다보며 큰 한숨을 짓는 버릇이 있다.


2003년 8월6일, 성남과의 홈경기.



성남 원정경기에서 이원식의 통한의 눈물을 기억하는 선수들은 이 경기 시작전에 어느때보다도 강한 투지를 불사르고 있었다.
홈에서 만큼은 성남을 한번은 이겨주겠다....라는 의식이 강했다. 기억들 하시겠지만 당시는 상대팀과 홈경기 2번, 원정경기 2번...이렇게 모두 4경기를 치뤘다.
스무경기 이상 치르면서 선수들간의 호흡도 어느덧 안정권에 들어갔고 다보 - 샤리 - 보리스의 용병 라인업도 팀내에 그런대로 융화돼 있었다. 원래 성실했던 제임스도 묵묵히 몸을 만들었다.



나는 그날 남기일이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보였던 기억이 난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은 발놀림과 상체의 움직임이다. 뛸때 상체가 앞으로 굽어지면 대개 컨디션이 좋지 못한 것으로 본다.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반사적으로 상체가 육상선수 마냥 굽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선수들의 경우 그렇게 뛰면 감독에게 혼난다. 축구선수는 왠만하면 상체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시야도 넓어지고 경기전체를 읽을 수 있게되기 때문이란다. 또한 슛 타이밍에서 공을 쳐다보지 않고도 디딤발이 공 근처에 가까우면 그만큼 자신감도 있고 몸도 좋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수비수가 뒤에서 상대방 옷자락을 잡는 경우가 많아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있거나 발이 둔하다는 증거다.



컨디션 얘기가 나오니 지나친 뒷얘기가 하나 있다.


바로 신승호 선수인데 2003년 4월 초 수원 원정경기에서의 아쉬운 부상 얘기다.
신승호는 그날 경기에서 전반 중반 수원 조병국과 헤딩경합을 하다가 꺼꾸로 떨어져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 떨어지는 순간 트레이너들이 벌떡 일어나 “어휴, 저거 허리 나갔다”하며 뛰어나가던 기억이 난다.
결국 트레이너들의 말대로 그 순간 신승호는 허리부상을 당했다. 들것에 실린채 라커룸까지 들어간 신승호는 누운채로 나에게 물과 수건을 달라고 했다. 가져다주니 “아휴~참...오늘 컨디션 좋았는데...”하며 아쉬워하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 경기에서 조병국에 대한 보복이 있었다. 조병국이 점프하던 신승호 밑으로 일부러 들어갔다고 판단한 남기일과 이원식은 각각 1번씩 조병국에게 강한 태클을 가했고 결국 조병국은 남기일의 태클에 발목과 뒤꿈치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그리곤 그 시즌을 접었다.
남기일의 축구화 뽕이 신가드에 빡하고 부딪히던 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고등학교 후배고 뭐고 인정사정 없는 태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수들은 그런걸 서포터들과 마찬가지로 ‘담군다’고 표현한다.



훗날 신승호 선수는 재활훈련을 거쳐 부천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는다.



8월6일 성남과의 홈경기로 다시 돌아와보자.
기억이 맞다면 남기일은 이날 첫번째 골을 터뜨렸다. 워낙 부진한 시즌인지라 선제골도 흔하지 않았던 시기에 프리킥으로 당시 선두이던 성남의 골문을 열었다. 곧이어 김도훈에게 동점골을 내줬지만 다시 전반 막판 남기일의 코너킥을 조현두가 헤딩으로 넣어 다시 역전했다.
후보였던 최현과 이성재는 코너킥을 성공시킨 남기일과 포옹까지 했다.(원래 남기일은 남들과 포옹하는 세러모니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맞은 하프타임에서 부천선수들의 분위기는 최고였다.


그런데 이어 벌어진 후반에서 부천의 수비는 와르르 무너졌다. 아니 수비가 무너졌다기보다 성남의 공격이 엄청났다. 후반에 투입된 황연석이 타겟맨으로 최고의 활약을 하며 이리네와 김도훈의 골을 도왔고 신태용이 쐐기골을 넣었다. 부천서포터 누군가가 던진 물병을 태연히 주워 마시던 신태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원식이 추격골을 넣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부천은 이날 3골이나 넣었지만 김도훈에게 3어시스트를 헌납하며 5골을 내준채 지고 말았다. 공격은 최선을 다했지만 김한윤 - 보리스 - 최정민 - 윤중희 라인이 부실했다.


이날 선수들과 난, 인하대 후문에서 맥주를 마셨지만 남기일은 경기후 숙소에서 말없이 홀로 샤워를 하고 홀로 사라졌다.



2003년 8월10일, 수원 닭장.


이성재 선수가 오랜만에 선발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주황색 나이키 축구화를 좋아했는데 선발출장할 것을 기약하며 미리 준비한 축구화였다.



나이키 축구화에 대한 기억이 하나있다.
어느날 클럽하우스에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안양LG에서 나이키축구화의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가 발가락과 뒤꿈치로 이어지는 인대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부천은 참고사항으로 트레이너들이 공고를 붙였을뿐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그 축구화에 이성재 선수는 광택제를 열심히 뿌리고 있었다. 뿌리고 문지르고 또 뿌리고 문지르고... 한참을 하니 누군가가 묻는다. “신발만 튈거야? 뭘 그렇게 뿌려대?”
오랜만의 선발출장의 기쁨도 있겠지만 이성재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공이 축구화에 쩍쩍 달라붙을걸.”
사실 광택제를 축구화에 뿌리면 매우 끈끈해진다. 시즌 첫골에 대한 열망을 이성재는 그렇게 드러냈다.

그런 이성재가 결국 일을 냈다. 전반 초반, 패스를 받은 이성재가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슛을 해 선제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빠른 판단과 민첩한 슈팅이 만들어낸 골이었다. 물론 이운재가 막을 수 있었다. 수비수 발 사이와 이운재의 겨드랑이를 파고든 공은 그렇게 부천의 선제골이 됐다. 결론적으로 이 슛은 이성재가 부천에서 기록한 마지막 골이었다.
이 선제골은 이날 7골이나 주고받는 대혈전의 서막이 된다.



7편에 계속 -



다 보셨으면 추천좀 많이 눌러주시기를.. ^^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구리구리 BOY *^^* -

2개의 댓글

Profile
안영호
2008.07.02
빨리빨리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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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식
2008.07.02
제가 올리는게 아니라서 ^^;; 요한이형이 올려줘야 올리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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