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목동 경기장에서 열린 아디다스컵 개막전 전에 다른곳 개막경기 하나는 꼭 이야기 해야하기에 글의 시점을 일주일 정도 전으로 옮기겠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20일 가깝게 더 전으로 개막전 들어가기 전으로 가야겠군요.
1996년 아디다스컵을 1-2주 정도 앞두고 부산에 거주하는 수원서포터 한분이(누구인지 현 상황에서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익명으로 처리하는거 때문에 거짓이라 하는 분이 계실겁니다만, 그분에겐 아쉽게도 실화입니다) 축구동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부산구단쪽과 이야기해 본 결과 "서포터 응원방식을 아디다스컵 개막전에서 보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뭔 말이지?
이때는 IMF 이전이기 때문에 이 오더는 아무리 봐도 김우중 회장이 내린거 같았습니다.
설명을 좀 하자면 당시 대우 축구팀은 다른 팀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지금은 K리그1, K리그2 에 참가하는 구단은 [독립채산재]라고 해서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해야 합니다만, 이때만 해도 기업 구단은 모기업의 조직표에서 어디에 위치한 '부서'였습니다. 대부분은 '홍보팀'에 속해 있었습니다.
당시 유공팀도 유공의 홈보팀에 있는 '축구팀' 부서였던 거죠.
대우는 예외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우 축구팀은 그룹내의 어느 부서 소속일까요?
비서실 산하에 따로 독립부서로 있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이 손수 챙겨다닌 부서였습니다.
괜히 김우중이라는 분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축구성덕' 소리 듣는게 아닙니다. 그의 경제계에서의 과는 제쳐두고라도 '김우중' 이라는 분은 축구와 바둑이라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선 크나큰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김우중 본인은 현실 FM 해 버린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흑자구단 만든게 대우 축구단이기도 합니다.
깜짝 놀라신 분도 계실 겁니다. 아니 대한민국 프로스포츠에서 흑자가 가능하다고요? 구라치지 마세요 라고 하실 분들도 계시겠죠. "기업 광고효과로 흑자효과 난거 아니냐"라고 하실수도 있지요.
그런데 실제 회계상으로 + 만들어낸 최초의 팀이 대우였습니다. 그리고 그 흑자도 이 글의 시점인 1996년 이전에 성공했어요!(1991년에 성공함) 거기다 폴란드에 있는 프로축구단도 인수해서 대우그룹 산하에 뒀던 진짜 '현실 FM' 했었던 축구덕후가 김우중 회장이었습니다.(폴란드의 '레기아 대우' 라는 프로축구팀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여튼 그런 '쇼케이스' 요청을 들은 [부산거주자인 수원서포터]분이 축구동 게시판에 상황을 소개해 주시면서 하이텔 축구동의 회원들께 지원을 요청한 거였습니다.
저도 당연히 간다고 했고 전국의 많은 분들이 'OK 이게 좋은 기회가 되서 부산에 서포터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되려 '대우같은 팀이 당연히 제대로 서포터 만들어지는게 맞다. 리그 최고의 명문구단 아닌가!' 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여튼 저도 후배 한명 데리고 심야버스를 타고 동래로 갔습니다.
당시엔 현재처럼 노포동에 터미널이 있지 않고 미남역 옆에 있던 때입니다. 미남역도 이딴 없었어요. 동래역에서 한참 걸어올라가야 터미널 나올 때였죠.
그러고보니 당시는 부산아시아드가 아니라 부산 구덕운동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부산지하철 1호선 타고 서대신역에서 내려서 언덕길을 올라갔죠.
그런데 넘 일찍 갔기 때문에 중간에 어디서 시간을 좀 때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언덕길 올라가다 보니 만화방이 하나 보이길래 지하에 있는 만화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만화방에서 만화만 보기 심심해서 같이 간 후배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데 옆에 있던 웬 아저씨가 절 보며 "혹시 하이텔 축구동 분이신가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아...나와 비슷한 생각 가지고 시간 여기서 보내시는 분이구나. 하고 딱 알았죠.
"네 시삽 티라노입니다"
"dream 박숭범이에요. 광주에서 왔습니다."
이후 저와 함께 여러 응원현장에서 같이 응원해 주시고, 때로는 절 위로해주시던 든든한 분이셨던...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전남 서포터의 대부' 박숭범 형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남은 시간동안은 진짜 빨리 지나갔습니다.
언제 광주 놀러오라고 해 주시기도 했고 정겹게 대해 주셔서 금새 친해졌습니다.
이제 슬슬 시간이 되서 구덕운동장으로 올라갔고 전국에서 모인 여러 하이텔 축구동 회원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원 응원하는 분들도 와 계셨습니다.
경기장이 참 참담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지금처럼 관리되던 경기장을 제가 딱 한번 봤습니다.
1994년 초의 울산이었죠. 하지만 그 다음 경기의 참상이 펼쳐진 대한민국의 '경기장 잔혹사'를 꼽으라 치면 제가 BEST 2로 꼽는 참상이었습니다. 이건 언제 이야기 해 드릴까 합니다.
그날 부산 구덕운동장은 대놓고 말하자면 '내가 밭에 온건가?' 싶었습니다.
곳곳이 트랙터 캐터펄트가 지나간 자국들로 그득했고 잔디는 그 자국들에 덮여 있었습니다. 잔디의 파란색은 아예 기대도 안하던 때이지만(지금같은 한지형 잔디가 아닌 이름바 '금잔디'로 불리는 난지형이 기본이었죠. 가을-겨울동안 노랗게 물드는 잔디요)
한숨이 나왔습니다. 왜 잔디밭이 그렇게 되어 있는지는 알만 했습니다. 그라운드 정리를 하던 흔적인 거죠. 근데 개막전이 이랬습니다.
언젠가 '대한민국 축구장 잔혹사'에 대해서 글이나 영상을 찍게 된다면 빠지지 않을 참상이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마니치가 데뷔한 경기였습니다. 그날 경기에서 기억나는거 몇개 중 하나는 마니치의 데뷔전을 제 눈 앞에서 봤다는 거겠죠. 첨 보자마자 든 느낌은 '웬 차범근이 뛰고 있나?' 였습니다. 진짜 기관차였죠.
두번째는 전국 각지에서 여러분들이 오셨구나...였습니다.
저 말고도 앞서 말한 광주에 사시는 박숭범 형님이 오신것 외에도 수원 서포터분도 계셨습니다.
세번째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 모임이 몇개의 서포터가 태동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응원에서 전반은 전국에서 모인 PC통신인들, 정확히는 동대문에서 활동한 저를 비롯한 수원서포터 몇이 주도를 했고 후반들어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과 경기장에 오신 부산 아재들께서 응원을 주도하시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998년 경에 부산서포터 분이 저에게 알려주시길 이날 모임에 대해서 화가 났다고 하셨어요. 우리들(부산 토박이들)도 할수 있는데 다른 동네사람들이 와서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분들이 부산 서포터인 '로얄 패밀리'(현재는 P.O.P)를 정규리그때부터 발동하게 됩니다.
부산일보에 올라온 가장 오래된 기사는 "PC통신을 기반으로 한 로얄패밀리가 1996년 6월부터 응원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던 것으로 아는데 실제는 이랬습니다.
부산의 서포터 '로얄 패밀리'는 수원과 같은 기준으로 기술한다면 부산은 1996년 3월이 창립일입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오신 박숭범 형님은 이후 전남 서포터의 시조로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물론 부산 지척의 울산에서 오고, 포항에서 온 PC통신인들도 계셨습니다.
이후 이야기 하겠지만 울산에서 서포팅 했다고 경찰 잡혀가는 일도 생겼습니다...그 잡혀간 분 중 적어도 한분이 이날 부산에 계셨어요.
PC통신 안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서포터'는 이제 도약의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이 경기였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적어도 제 기억에서는 이 경기를 통해 무려 3개팀 서포터가 더 생긴 겁니다.
적어도 5개팀(부천,수원,부산,울산,전남)이 기존의 응원을 탈피한 단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1996년 3월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