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이야기를 해 볼까 ... 23
  • 양원석
  • 2025.02.16 17: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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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준


K리그 초창기부터의 축구팬.

동대문 3개홈팀 시절에 PC통신 하이텔 축구동이 시작한 유럽스타일의 서포터 응원방식에 호감을 가지고 계시다가 1996시즌 개막전부터 부천 응원에 리딩을 서 주셨습니다.
초창기 붉은악마에서도 앞장서서 여러 일을 해 주신 대한민국 서포터계의 큰 형님중 한분.

단언컨데 1996년 개막전에서 일반 관전을 포기하고 바로 서포터 리딩으로 활동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부천 서포터가 있을 수 있는 큰 일을 해 주신 분입니다.

이분에 대한 이야기와 스토리가 딱 이번 개막전 직전에 맞춰 올리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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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시즌 아디다스컵 개막전이었던 부산행은 작게 보자면 '아직 서포터라는 개념이 넓혀지기는 쉽지 않겠구나' 였고 크게 보자면 그날 경기의 '쇼케이스' 덕분에 몇개 서포터가 생겨나는 계기가 된 부분에선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날부터 고생해서 왔던 저를 위해 박철효 형님은 야간열차 침대칸을 잡아주셨습니다.
현재 코레일은 야간열차를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 탄 통일호(이것도 지금은 사라졌죠) 야간열차는 제가 한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탄 침대차였습니다. 그 덕분에 올라올 땐 편하게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수원 응원을 표방한 분들은 다시 오지 않을거 같았고 목동은 처음 가보는 경기장이었습니다.
1988년 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외엔 몰랐습니다.

목동 운동장은 잠실 주경기장의 보조경기장이 아닌 예비 경기장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착공은 1987년 개장은 1989년이기에 뭔소리냐 하시는 분 계시겠지만 올림픽은 주경기장 외에도 예비경기장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즉 1988년 1/4분기에 천재지변급의 일이 주경기장에 터진다면 예비 경기장에서 치뤄야 하는 것이죠. 때문에 1987년에 착공되어 만들어져 놓고 1988년 여름 이후 천천히 마무리지어 1989년 11월에 개장하게 되었죠. 그래서 목동운동장의 주차장은 체육관이 건설될 자리로 부지계획이 되어 있는 자리였습니다. 실제로는 천재지변이 없었기 때문에 체육관은 현재까지도 완공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여튼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개막전에 가서 유공의 김시문 대리님과 이동남 대리님에게 응원도구가 어디에 있는지 안내받았습니다.
1997년 이후 헤르메스에 가입한 분들이 아는 자리와는 다른 자리였습니다. 헤르메스에게 독점적인 공간을 주게 된 것은 1998년 이후의 이야기니까요.

경기 시작하기 전에 북을 자리에 셋팅했습니다. 본부석 맞은편, 본부석에서 본다면 10시 또는 11시자리쯤이고 경기장 윗단에 자리잡았습니다.
제 주변엔 사람이 뭐...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큰 북을 보고 신기해하는 아이 몇명 뿐이었죠.

멍때리고 있는데 절 부르는 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원석아! 따른 애들은 어디있어?"

누구지? 하고 고개를 돌리니 1995년에 몇번 뵈었던 전명준 형이었습니다.

- 아, 형님 안녕하세요"

"응 그래, 딴 애들 어딨어?"
- 저 혼자입니다.

"얘들 목동에 안온대?"
- 아뇨, 올해부터 수원 응원한답니다

"그럼 너 혼자야?"
- 그렇게 됐네요

"어? 그래? 너 혼자 하면 힘들지 않겠냐?"

저는 그냥 허탈하게 웃으며
- 어떡하던지 해 봐야죠.

반가왔습니다. 그래도 아는 얼굴인 분 계시구나. 쪽팔리지 않게 어떻하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명준형님이 바로 이야기를 계속하셨습니다.

"야. 안되겠다. 내가 해 줄테니까, 같이하자"

하시면서 그날 입고 오셨던 얇은 점퍼를 벋고 팔을 걷어올리셨습니다.
그리고 같이온 일행에게
"나 오늘 여기서 응원할테니까 편한데들 가 있어"

전명준 형님과 같이 다니는 일행분이 한분 계셨습니다. 수원 화서쪽에 사시는 분이었죠. 그분은 제 한참 뒤쪽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제 뒤에 몇명 없었지만 명준형은 바로 응원리더로 나서주셨습니다.
작년에 많이 와 주셨던 신동일 선생님은 학기초라서 목동 개막전엔 못오신다고 했지만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회원 몇분이 경기시작전에 와 주셨습니다.

전명준 형님은 1995년에 동대문에서 서포터들의 응원을 계속 봐 오셨기 때문에 응원 콜은 다 알고 계셨고 응원구호 하나하나 선수 콜 하나하나 해 주셨습니다. 전 거기에 맞춰서 북치고 같이 소리지르면서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명준형님은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명준형은 "하..." 하시더니

"뭐 그렇게 수원 응원하러 간거야? 그럼 넌 어떡할거냐?"
- 전 계속 부천 응원하려고요

"오늘처럼 힘들지 않겠어?"
- 그래도 저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았다. 다음 경기도 내가 올 테니까 같이하자"

너무 고마운 이야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홈경기 때도 명준형은 와 주셨고 또 응원리더를 해 주셨습니다. 원래 명준형은 특정 팀 보다는 축구 좋아서 그리고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경기에 오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일화 경기에 많이 오셨지요. 그런데도 이 경기 이후 부천 붙박이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목동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은 적지만 계속 늘어났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같이 응원 콜을 외쳐주었고 그들은 다른 친구를 또 데리고 왔습니다. 나이있으신 직장인들도 한두명씩 오셨고 하이텔 축구동의 직장인 분들도 한두분씩 왔습니다.

심지어는 수원, 목동을 왔다갔다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수원 서포터의 상당한 고위층에 있는 분은 그해 여름까지는 동시에 경기가 잡히지 않는 주말에는 하루는 목동 하루는 수원 경기를 다니셨던 적도 있습니다.
그냥 경기만 보신게 아니라 제 뒤에 앉으셔서 응원구호 외치고 응원가도 같이 불러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여름철 되면서

"원석아 두군데 다 다니기는 쉽지 않더라 수원에만 집중해야겠다. 미안하다" 하시면서 수원에 집중하셨습니다.
- 미안하시긴요, 지금까지 와 주신것만으로도 어딥니까. 근데 형님, 진짜 지금까지 응원한 거에서 가장 재미있던 경기는 수원하고 여기서 경기 한 거였어요. 응원이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응원이 끊이지 않으니까 정말 재미있더라구요

"ㅇㅇ 그건 나도 그렇더라"
- 열심히 하면 목동도 사람들이 더 찰겁니다. 저 여기서 열심히 하며 있을테니까 수원에서도 서포터 잘 해 주셔서 경기장 재미있게 만들어보자구요

이땐 이랬습니다.

이전엔 K리그라고 하면 그냥 운동장 가장 최상단은 부르스타 가져가서 삼겹살 구워먹고 소주나 막걸리 까는 곳이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성화대 인근은 침대석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그 근처의 시멘트 보면 불에 탄 그을음이 지워지지 않는 곳이었죠.

유럽스타일 응원을 부러워 하지만 말고 우리도 해 보자.
한두명이 하면 쪽팔리지만 서넛 넘어가니 덜쪽팔리더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명준형님이 큰 기둥이 되어 주셨습니다. 진짜 개막전에서 저에게 말 걸어주시고 리딩 서 주신것에 대해서 전 아직도 크나큰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자면 1996년 개막전에서 명준형님이 말을 걸어주지 않으셨다면 과연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제가 부천 서포터 인생에서 잊지 않는 날이 몇개 있는데 그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하루가 이 날입니다.

일주일 뒤가 2025 시즌 부천 개막전이네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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